술을 마시다가 '순수'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총체적으로 순수한 인간' 이란 단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관념일뿐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우린 정의 내렸다. 단, 어떤 부분, 어떤 태도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순수한 인간은 있다고 인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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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지하철 역 앞에는 떡볶이를 파는 할머니가 있다. 이삼년 전이었나? 나이와 인상에 맞지 않게 길거리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는, 어느 오후에 그 할머니에게 들렀었다. 그리고 너무나 인간적으로 손님을 대하는 태도에 살짝 감명을 받았다. 그것은 신천역의 그 호화스런 목걸이를 주렁주렁한채 컨셉으로서 '욕쟁이 할머니'를 자처하던 무매너 속물 할멈의 완벽한 반대편의 느낌이었다.
술에 취한 나는 비틀비틀 걷다가, 단 한번 들렀을 뿐이었던 그 할머니의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그리고 왠지 그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아니, 몇년전 내가 느꼈던 그 인상의 실체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는게 정확하겠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이 할머니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최소한 떡볶이를 파는 태도에서만큼은 매우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2000원'이 아니라 '자신의 떡볶이를 먹어 주러 온 인간' 이라고 느끼게 해주었으니깐. 아주 작은 말과 친절만으로.
그렇게 나를 적당히 챙겨주고는 그 할머니는 어떤 아줌마와 본격적인 수다에 들어갔고, 애초에 떡볶이엔 별 관심이 없던 나도 그녀들의 대화나 엿들으며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할머니가 분연히 외쳤다.
" 나는 꽃이라면 아주 환장을 해~ "
구부정한 허리의 나이 일흔인 노점상 할머니가 꽃을 찬양하고 있었다. 서른 갓 넘은 우리가 '산다는건 참 지친다..' 라며 인상 찌푸리고 술잔을 비우고 있을때, 이 할머니는 '자식들이 주는 현찰봉투보다도 꽃선물이 더 좋아'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활짝 띈 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갑작스레 터진 나의 웃음에 어리둥절한채 함께 웃는 그 할머니를 바라보며, 어쩌면 세상엔 '총체적으로 순수한 인간' 이 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만큼, 볼려는만큼 보인다는 말대로, 단지 너와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백합과 장미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고, 나는 한번 더 유쾌해진채 그곳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