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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 잘하는 사내(男).
  2. (詩) 작가와 꽃병
  3. 남자, 여자. - 2 -
  4. '오래 된 정원' 을 보다 3
  5. Love in NG(내셔널 지오그래픽)

일 잘하는 사내(男).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대답

돌아가는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들었다

왜 울었을까

...




- 박완서 마지막 에세이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중에서.






이맘때 박완서씨의 이상형 핵심 키워드. '일 잘하는 사내'
착한 사내도 아니고, 잘 생긴 사내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도 아닌 .
굳이 상상해 보자면, 구릿빛 피부에 말 없고 건장한, 믿음직스러운 남자와 함께.


'죽기전에 완벽하게 정직한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바램으로서의,
농사 짓고 살고 싶다
.


이런 사내라면,
블로그는 왠지 모를거 같고,
가슴 짠한 영화를 보고 나서도 별 호들갑 없이
'좋네..' 한마디 한 후 낮에 못다한 못질 마저 하러 나갈거 같고.


'깊고 깊은 산골에서' 둘만 살고 싶다는 처녀의 고백에
...좀 야한데..*-_-*  하는 생각 같은건 안하지 싶은.


그런 사내가 아닌게 부끄러워서
젊은 눈망울들은 가는 길에 눈물 흘렸겠지.
혹은 내 남자가 그런 사내가 아니라서 분했으려나.



이쯤에서 떠오르는 몇년 전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유서.


'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


아, 나는 다음 생에 어떤 사내로 나서 어떤 연애를 하고 싶은가.



... 지금이나 좀 잘 하고 나서 생각해 볼까?



(詩) 작가와 꽃병



무라까미 류
다까하시 겐이치로
오쿠다 히데오
...

옆나라에선 부 때려치고 쟁하던 세대들이
좌절이든 전략적 선택이든 뭐든해서 글쟁이로 거듭나 살아가는데.
혁명인지 생활인지 알 순 없지만 뭔가 불타고 있는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재산.

그러나 이 모, 김 모, 고 모, 박 모, 부 모 ..

이 반도에선 골방과 도서관에 쳐박혀 있던 수줍은 젊은이들과
대학가 호프집에서 골뱅이와 함께 노가리를 씹어대던 청춘들이 글쟁이가 되었다.
참으로 모던하고 아티스틱하지만 소박하고 지루한, 글과도 비슷한 그 나물 타령들.

대신 미왕별이 대빵 맨날 회콜드로 지는건 전두환이 개새끼라서,라던 선배들은
처음엔 입에 풀칠하겠다며 풀 죽어 추적추적 기어간 학원가에서
왕년 구호 외치던 노련미로 마이크 잡더니
이젠 기름기 가득한 입술을 번들거리며 원장님과 CEO들로 거듭나셨다.

자긴 뭘해도 잘한다며 뿌듯해하던 이 선배님들은
그러나 뭔가 느끼하면서도 헛헛한 내장의 기운이 좀처럼 가시질 않아,
자꾸 배를 두들겨봤자 덮인 삼겹살에 좀처럼 시원하질 않다보니
이젠 슬슬 나를 너를 우리를 다시 사랑하고 싶어들 한다.

우린 복받은 인간들이다.
뭘해도 잘하는 그 양반들이 곧 우리 민중과 민초들을
열이 한걸음씩 열걸음이라며 이끌고 나가줄테니까.
허름한 골목길마다 늘어설 포스터에서 뵐 그 날이 오면!
마흔평 오피스텔 에어콘 옆에 놓인 꽃병에게도 해방을!

난 그래서 쓸데없이 배아프게나 하는 옆나라 작가들보다
매트로폴리스적이면서 술나발도 잘 부시는 우리 작가들이 더 존경스럽고,
인간적이면서 풍류도 아는 우리 선배님들이 훠얼씬 더 마음에 든다.

조금 허탈하더라도 웃기는게 어디야.







남자, 여자. - 2 -





남자는 책임감,





여자는 의리.






'오래 된 정원' 을 보다


며칠전에 예고편을 볼때부터 이미 슬펐다.
영화가 시작하려는 순간부터 나는 가슴 안쪽의 아릿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하지만 시대와 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이별해야 했던 연인들이라니,
단 몇달간의 사랑의 댓가로 십수년을 기다리고도, 그러고도 다시 만나지 못한 인연이라니.

초반부 감옥에서 나온 이젠 늙어 버린 남자가 고기를 한줌 입에 넣고 씹다가 뚝뚝 흘리는 눈물. 정말 슬픈 자의 눈물이란 저럴때, 저런 모습으로 터져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 며칠 오디션 기간 동안 지겹게 봐왔던, 연기 초짜들까지도 참으로 무난하게 보여주던 그 처절하게 질러대는 고통의 비명과 눈물들, 오히려 그런 것이 가짜라는 것을 슬퍼보았고 울어보았던 이 나이의 나는 안다. 그래서 그의 그 슬픔에 나도 동참했다.


이 영화가 멜로라인에 충실하지 않고 시대와 인간에 대한 언급에 중반 이후 집중하는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그것이 이젠 특별히 참신하지도 않은 관점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냥 아주 슬픈 연인들의 이야기를 기대했던거뿐이니까. 하지만 만드는 자의 책임감이란, 그런 언급을 하지 않으면 뭔가 얄팍한 장사꾼이 된듯한 죄책감을 느낄법도 한 일이다. 그래서 재미는 덜했지만 투덜거릴 필요까지는 없을거 같다.

이어서 본 '미녀는 괴로워' 도 바보스럽지 않은 대중영화였다. 여전히, 열심히 영화를 만드는 인간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이래저래 반가운 일이다.


집에 오는 길에 정이현의 소설집 하나와 황석영의 '오래 된 정원'을 사들었다.


내가 겪은 시대도 아니고, 내가 겪은 슬픔도 아니지만, 나는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거처럼 그날을, 그들을 추억한다. 이 책을 읽을 앞으로 며칠간은 아마 마음 한쪽이 묵직할거 같다.


Love in NG(내셔널 지오그래픽)

식사를 하며 무심코 채널을 돌렸다.
정확한 프로그램 제목은 기억 나지 않는데, 일종의 '끔찍한 장면 베스트' 였던듯.
아침부터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괴로와졌지만 그래도 눈을 뗄순 없었다.

어미의 자궁에서(상어가 자궁이 있다?) 먼저 부화해서는 다른 형제자매들을 먹어치우는 새끼상어 이야기에서부터, 기근이 시작 되자 배고픔을 못이겨 다 큰 어미 코끼리마저 습격하는 사자무리들의 이야기, 촬영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화산 폭발 장면 등등..

그런데 여기에도 사랑이 있었다.


하나. 아내의 추모식.

스카이 다이빙이 취미인 한 부부. 그 중 아내가 남편과 함께 오른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추락사 하고만다. 그로부터 얼마뒤, 홀로 남은 남편은 동료들과 함께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이빙 장소였던 거대한 폭포위에 오른다. 그리고 그곳에 아내의 뼛가루를 뿌리고 그녀를 그리며 그 너무나 높고 위험한 절벽에서 다이빙을 펼친다.


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는 남자.

10년전, 아내가 난산을 하며 죽음의 위기를 겪는다. 남자는 신에게 아내를 살려준다면 앞으로 15년간 매해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십자가의 고행을 겪겠다고 맹세한다. 아내는 살았고 남자는 신에게 그 약속을 지키기 시작한다. 매년 정해진 날이 되면 그는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손과 발을 못질 당한다. 고통을 참을수 없어 끔찍한 비명을 지르지만,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듯 망설임 없이 내년을 다시 기약하며 십자가에서 내려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내의 생명을 자신의 고통과 기꺼이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중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무도 지킬 것을 강요하지 않는 약속을 12년간 지킬수 있을까.


...


세상엔 아직 사랑이 많다. 충분히 사랑하며 살지 못하는 우리들이 고개를 갸우뚱 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