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 위드 미> - 아무도 없는 섹스.


감독 클레망 비고
배우 로렌 리 스미스 / 에릭 발포 / 리차드 셰볼로 


깐느에서의 호들갑스렀던 반응도 있고 해서 꽤나 자극적인 영화일줄 알았더니 의외로 얌전하다. 최근에 본 '천국의 전쟁', '브라운 버니' 에서의 그 롱테이크 펠라치오 씬에 비하면 이 정도는 멜로 수준. 단지 성기가 몇번 나오고 주테마가 섹스이고, 그 묘사가 좀 리얼하다고 해서 제한상영가 논쟁이라니, 애도.


영화의 줄거리는 심플하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중간에 질투와 다툼이 있고, 헤어지고, 그 빈공간을 못잊어 괴로와하다가, 다시 만난다. 끝.


단지 차별점은 여자가 관계 전체를 섹스로 인식하는 타입이었고, 이 두 남녀의 관계는 섹스를 중심으로 진행 되며, 각종 갈등 및 그리움으로 인한 고통도 결국 섹스를 매개로 이루어진다는 것. 따라서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려면 섹스란 단어를 한 백번쯤은 써야 끝낼수 있을거 같다.


음.. 섹스라....


섹스에 관한 가장 큰 환상은, 그것이 인간들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는 것에 있다. 그래서 도시인들의 고독이 깊어질수록 그들의 삶속에서의 섹스도 점점 거대한 위치를 차지하며 잠식해 들어온다. 범람하는 문화속의 섹스 코드, 점점 속도를 높여가는 섹스에 대한 호기심과 탐닉, 외로움의 이름하에 저질러지는 수많은 원나잇의 밤들, 저 시골 러브호텔까지도 꽉꽉 차는 풍요로운 섹스의 시대.


어차피 한 개인의 욕망을 인정하고 개방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진행 될수록 이런 방향으로 흐르는 변화를 거스를수는 없다. 말세야, 라며 운운하는 것은 꼰대들의 태도일뿐 이 시대에 발담그고 사는 우리가 택해야 할 자세는 아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섹스가 우리의 지친 영혼을 치유해준다고, 혹은 줄수 있다고 믿는 기대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에 대해 거칠지만 단순한 반증들을 한번 나열해보자. 30년쯤전보다 섹스의 질적, 양적 레벨이 훨씬 높아진 현재, 사람들은 더욱 서로를 소외시키며 외로움에 떨고 있다. 가장 자유분방하게 섹스한다는 북유럽이 자살율은 가장 높다. 한 개인에게 있어 섹스를 몰랐던 어렸을때보다 알고 있는 지금이 덜 외롭거나 하는 일도 없다. 등등, 기타 등등.


물론 심신이 지친 어느 밤에 따뜻한 체온이 그리워지는 것은 인간적이다. 내 옆에 따뜻한 몸을 가진 그녀가 있다면 구원 받을수 있을거 같은 절실함은 그 순간만큼은 진정이다. 그래서 섹스란 기본적으로 진통제의 속성을 지닌다. 아주 찰나의 고통을 약화 시키거나 지연시키는 역할에선 효과적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에 그 본질적인 특징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의 섹스 역시 마찬가지. 친밀감을 강화 시키고 소통의 계기를 마련하게 해주는 것까지만을 가능하게 해줄뿐,  만번쯤 섹스한다고 해서 그 둘이 서로에 도달하거나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미흡하기만 한 그 섹스를 넘어서서 그를 송두리째 먹어 버리고 싶은 갈증에 시달리잖아? - 그런적 없다면 재수강들 하시라.-  그 갈증에서 섹스의 강도를 높이는 것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여줄 뿐이지 않더냔말이다. 존재의 고독을 달래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을 담은 편지 한장, 따뜻한 포옹 그런 것이게 마련이라니께.



이 영화는 저 평범한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섹스로 시작해서 섹스로 관계를 유지해가는 것을 익숙해하는 한 여자. 그래서 한 남자에게 반해서 가까와지는거까지는 좋다. 소위 쿨하다. 자고 난 후의 '나를 쉽게 생각하면 어쩌지?' 라던가, '얘가 부담 주면 어쩌지?' 식의 너무나 한국적인 과정들은 생략 된다. 섹스와 관련 된 음침한 분위기를 배제한채 이들은 참으로 밝고 열정적으로 서로를 품는다. 그래, 선진적인 섹스는 저래야지. 아암.


근데 여기까지. 이후부터는 어째 찌질거리는 폼이 이 나라랑 크게 달라보이지 않게 진행 된다. 클럽에서 딴 남자들이랑 춤추는거 보면서 질투하더니 파괴적인 반응을 보이는 남자나, 별것도 아닌 것에 상처 받고 떠났다가 다시 매달리는 여자나, 그리고 서로 쌩까고 매달리고의 반복. 결국 인간은 거기서 거기라는 것만 열심히 증명해주고 만다.


이렇다보니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하품이 나온다.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속 부류의 특징이자 이 영화의 특징인, 관계의 중심에 지나치게 섹스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만나면 매번 자는 데이트에 익숙한 커플이 갈수록 관계의 공허함에 괴로와하게 되는 풍경과 비슷하다. 따라서 이렇게 몸에만 몰두하는 태도는 오로지 정신적인 가치가 최고라고 부르짖는 모습 못지않게 관념적이다.


이 영화 속 여주인공은 예쁘게 생겼다. 그리고 이 영화의 비주얼적인 포장도 꽤 그럴듯하다. 그러나 위에 말한 이유들로 인해 그들의 섹스는 쉽게 지겨워지고, 동시에 이 영화도 함께 지루해진다. 욕망이라는 이젠 흔해져버린 코드를 나열해놓고 자극적인 성기 노출로 화제를 모으고선, 인터뷰때는 고독한 현대인의 어쩌구저쩌구를 얘기하는 영화도 요즘은 진부하다. 사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거 아니냐구.


자고났더니 좋아져 버렸네?


저 선후가 바뀌는 것에 과민한 알레르기 반응 일으키는 한국 정서에선 저것만으로도 나름 유효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주인공 여자에게 이 이상이 없듯이, 이 영화에도 이 이상은 없다.



여튼 이래저래 요즘 연속으로 깐느 화제작들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여배우들은 좀더 고달파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뭐 기본적으로 남자배우의 꼬추를 입에 물 각오를 해야 좋은 배우라고 얘기 들을 수 있는 세상이 오는거 아닌가 싶어지니.


아, 내 와이프는 연기 시키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