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에 해당되는 글 20건

  1. 장어와 꼼장어.
  2. 어느 표어.
  3. 미혼과 기혼 사이.
  4. 떡볶이와 백합
  5. '사랑' 에 관한 단상.

장어와 꼼장어.


어제 송지의 홈피에서 장어 사진을 본 후 장어가 너무나 땡겼었다. 그리고 오늘 대학로에서 술 한잔 하다보니 다시 장어가 자꾸 떠올랐지만 이곳 어디에 장어집이 있는지 알수 없었다. 그래서 잠시 헤메다가 그냥 가던 길에 본 꼼장어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장어로 안되면 비슷하게 생긴 꼼장어라도.. 라는 심정으로.

그러나 이곳의 꼼장어는 장어에 대한 갈증을 달래주기는 커녕 비위상함으로 다가왔고(그 처음 목격한 척수인가 뭔가 하는 정체 모를 부위의 징그러움이란..-_-) 꼼장어를 주장한 내가 막상 이런 태도를 취하자 일행들의 욕이 바가지로 쏟아졌다.

사실 나는 예전엔 장어를 혐오식품군으로 분류해놓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어쩌다가 처음 먹어보고는 여태껏 장어구이를 모르고 살아왔던게 억울해져 버렸다. 그런 선입견으로 나는 내 인생의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쳐왔을까 하는 오바를 더하니 지난 삶에 대해 통한의 눈물까지 흘릴뻔 했다.

- 부연하자면 나는 꼼장어도 좋아하는 편이다. 가끔 친구들과 술마시다가 즉흥적으로 부산행 마지막 열차를 타고 내려가서 해운대 앞 포장마차에서 먹던 꼼장어 구이는 단지 안줏거리 이상의 어떤 뉘앙스를 나에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장어는 장어이고 꼼장어는 꼼장어일뿐이었다. 제 아무리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도 대체 되어질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있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이것은 마치 '그 사람'에 대한 갈증과도 비슷하다. 꼼장어로 대체 될 수 있는 장어의 갈증이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닐것이고, 그의 빈자리에 다른 사람으로 적당히 채우고, 금방 잊은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사랑이란 것도 별로 대단한건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어머니의 사랑이 한 인간에게 중요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것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은 좀처럼 경험하기 쉽지 않은 지점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세상의 허접스러운 연애질들이 시답잖은 이유는 반대로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어떤 인간'에 대한 애정이기 때문이다. 성격이 좋아서, 이뻐서, 능력 있어서..라는 식으로 텍스트로 설명 될 수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란 결국 그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갖는 사람에게로 언제든지 옮겨 갈 수 있는 종류일거 같다.

... 그래서 나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장어'가 먹고 싶었고,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졌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둘도 없는, 바로 그것들에 대한 갈증이므로.


어느 표어.




'서로 사랑하며 정직하게 삽시다.'





오늘 간 식당에 걸려 있던 가훈.



이것은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요소들이고,
이 가훈을 적은 사람은 건강, 돈, 명예 같은 여러 다른 가치 중에서
삶에서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되었나보다.




... 나는 그 마음이 왠지 눈에 걸려 5초동안 바라 보았다.




미혼과 기혼 사이.

그들 사이에는 아주 넓고 깊은 골이 흐른다.

만나던, 홈피를 가던, 하다못해 게시판 글을 하나 쓰더라도 미혼들이 어디를 놀러가고, 무엇을 보고, 자신의 불안정한 현재에 대해 고민을 늘어놓을때, 기혼들은 애기 얘기, 와이프(남편) 얘기, 주택 분양 얘기 들을 늘어 놓는다.

가끔 나는 이러한 차이들이 서로를 소외 시키는 동시에, 그 결과로서 각자를 경쟁욕구에 빠지게 만드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때가 있다. 기혼이 보는 미혼은 왠지 자유로와 보이고, 온전히 자신을 위해 인생을 투자하고 있는듯 보이고, 미혼이 보는 기혼은 그 평화와 안정감이 차마 넘볼 수 없는 종류의 것으로 보이고.

그래서 그들은 상대편을 각자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선택(혹은 선택에 가까운)에 대해 후회하지 않음을 스스로에게, 상대에게 증명하고자하는 시도들을 계속 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대부분 지루하고 무의미한 것들로 가득차 있는 것을. 재밌어 보이는 싱글의 술자리란 1주일 내내 심심해하며 뒹굴다가 단 하루 벌어진 것이었음을, 안정되어 보이는 기혼들이 실제로는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아둥바둥 하고 있는지를.(이건 추측)

그것들을 드러내지 않은 채 서로를 대하다보니

이 세상엔 온통 달콤한 고독과 자유를 누리는 능력 있는 싱글들과, 평화와 행복에 어쩔줄 몰라 하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은 기혼들로만 가득차 있는듯 보인다는 것이다.

난 그 둘 다를 믿을수 없다.




... 사실은 믿고 싶지 않은건지도. -_-

떡볶이와 백합


술을 마시다가 '순수'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총체적으로 순수한 인간' 이란 단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관념일뿐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우린 정의 내렸다. 단, 어떤 부분, 어떤 태도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순수한 인간은 있다고 인정하면서.

...

경희대 지하철 역 앞에는 떡볶이를 파는 할머니가 있다. 이삼년 전이었나? 나이와 인상에 맞지 않게 길거리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는, 어느 오후에 그 할머니에게 들렀었다. 그리고 너무나 인간적으로 손님을 대하는 태도에 살짝 감명을 받았다. 그것은 신천역의 그 호화스런 목걸이를 주렁주렁한채 컨셉으로서 '욕쟁이 할머니'를 자처하던 무매너 속물 할멈의 완벽한 반대편의 느낌이었다.

술에 취한 나는 비틀비틀 걷다가, 단 한번 들렀을 뿐이었던 그 할머니의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그리고 왠지 그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아니, 몇년전 내가 느꼈던 그 인상의 실체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는게 정확하겠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이 할머니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최소한 떡볶이를 파는 태도에서만큼은 매우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2000원'이 아니라 '자신의 떡볶이를 먹어 주러 온 인간' 이라고 느끼게 해주었으니깐. 아주 작은 말과 친절만으로.

그렇게 나를 적당히 챙겨주고는 그 할머니는 어떤 아줌마와 본격적인 수다에 들어갔고, 애초에 떡볶이엔 별 관심이 없던 나도 그녀들의 대화나 엿들으며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할머니가 분연히 외쳤다.

" 나는 꽃이라면 아주 환장을 해~ "


구부정한 허리의 나이 일흔인 노점상 할머니가 을 찬양하고 있었다. 서른 갓 넘은 우리가 '산다는건 참 지친다..' 라며 인상 찌푸리고 술잔을 비우고 있을때, 이 할머니는 '자식들이 주는 현찰봉투보다도 꽃선물이 더 좋아'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활짝 띈 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갑작스레 터진 나의 웃음에 어리둥절한채 함께 웃는 그 할머니를 바라보며, 어쩌면 세상엔 '총체적으로 순수한 인간' 이 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만큼, 볼려는만큼 보인다는 말대로, 단지 너와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백합과 장미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고, 나는 한번 더 유쾌해진채 그곳을 나섰다.

'사랑' 에 관한 단상.


잠이 오질 않았어. 그래서 오랜만에 '이보다 좋을순 없다' 를 다시 찾아보았지. 이 영화에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대사, 사랑의 본질과 지향점을 알려주는 그런 얘기가 나오거든. " 당신은 나로 하여금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게 만들었어. " 그래.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사랑' 이란 정확하게 저것이라고 생각해.

그를 위해서, 그리고 서로의 관계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좀 더 나은 나 자신이 되도록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싶어지는 것. 그를 상처주거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수 있는 모든 요소를 나 자신에게서부터 제거하고 싶어지는 것.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세상에게 부끄럽지 않길 바라는 것. 그가 나를 세상에서 제일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단지 나를 사랑해서가 아닌 객관적인 사실이 될 수 있게 되는 것. 그래서 더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로맨틱한 사람이 되고 싶고, 더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고, 더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바라게 돼.

그러나 대부분의 어리석은 우리들은 저 열망을 단지 스쳐지나가는 혜성처럼 반짝임이 지난후 잊어 버리게 되지. 그래서 순간이나마 나를 강하게 휘감았았던 저 진실한 바램을 망각한채 지금의 나를 지켜 가는 것에 다시 익숙해지고 말아. 그리고는 관계가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상대가 나를 위해서 바뀌지 않음에 불평하고 섭섭해하지. 나의 세계는 갈수록 옳거나, 혹은 어쩔수 없다는 것들로 날이 지날수록 굳건해지면서 말이지.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나 자신을 완전히 버리는 일 같은건 인간에겐 불가능한 영역일지 몰라. 혹여 그 경계를 넘은 누군가가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길게 행복할순 없을거라고 생각 되고. 거기에다 어떤 기준에 맞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에 관한 분류에까지 고민에 들어가면 저 심플했던 명제가 한없이 복잡한 선문답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

따라서 그것은 어쩔수 없이 자신의 상식과 직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져. 나에게 있어 무엇이 문제점이고, 무엇이 더 나아질수 있는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이 그와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그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것도 나이고, 해결 할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일테니까.

그에 대한 고민 없이 단지 지금의 사랑만을 즐기는데 여념 없는 연인들에겐 완성도 있는 사랑이란건 존재할 수 없어. 그들에게 지금의 열정의 순간이 지나간 후 남는 것은 재로 덮여 있는 일상과, 중늙은이들의 그 시절 추억같은 중얼거림뿐. 그때 그들은 더 이상 '행복한 연인' 이 될 수 없어지고, 새벽이 오기전까지 세번 그 사랑을 부정하게 되거나, 좀 더 견디는 법을 잘 익힌 이들은 그 일상의 안정을 지키기 위해 참고 버티는 쪽을 선택하게 되지.  둘 중의 하나는 사라질 수 밖에 없어지는거야. '행복한' 이 사라지던가, '연인'이 사라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