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송지의 홈피에서 장어 사진을 본 후 장어가 너무나 땡겼었다. 그리고 오늘 대학로에서 술 한잔 하다보니 다시 장어가 자꾸 떠올랐지만 이곳 어디에 장어집이 있는지 알수 없었다. 그래서 잠시 헤메다가 그냥 가던 길에 본 꼼장어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장어로 안되면 비슷하게 생긴 꼼장어라도.. 라는 심정으로.
그러나 이곳의 꼼장어는 장어에 대한 갈증을 달래주기는 커녕 비위상함으로 다가왔고(그 처음 목격한 척수인가 뭔가 하는 정체 모를 부위의 징그러움이란..-_-) 꼼장어를 주장한 내가 막상 이런 태도를 취하자 일행들의 욕이 바가지로 쏟아졌다.
사실 나는 예전엔 장어를 혐오식품군으로 분류해놓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어쩌다가 처음 먹어보고는 여태껏 장어구이를 모르고 살아왔던게 억울해져 버렸다. 그런 선입견으로 나는 내 인생의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쳐왔을까 하는 오바를 더하니 지난 삶에 대해 통한의 눈물까지 흘릴뻔 했다.
- 부연하자면 나는 꼼장어도 좋아하는 편이다. 가끔 친구들과 술마시다가 즉흥적으로 부산행 마지막 열차를 타고 내려가서 해운대 앞 포장마차에서 먹던 꼼장어 구이는 단지 안줏거리 이상의 어떤 뉘앙스를 나에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장어는 장어이고 꼼장어는 꼼장어일뿐이었다. 제 아무리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도 대체 되어질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있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이것은 마치 '그 사람'에 대한 갈증과도 비슷하다. 꼼장어로 대체 될 수 있는 장어의 갈증이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닐것이고, 그의 빈자리에 다른 사람으로 적당히 채우고, 금방 잊은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사랑이란 것도 별로 대단한건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어머니의 사랑이 한 인간에게 중요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것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은 좀처럼 경험하기 쉽지 않은 지점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세상의 허접스러운 연애질들이 시답잖은 이유는 반대로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어떤 인간'에 대한 애정이기 때문이다. 성격이 좋아서, 이뻐서, 능력 있어서..라는 식으로 텍스트로 설명 될 수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란 결국 그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갖는 사람에게로 언제든지 옮겨 갈 수 있는 종류일거 같다.
... 그래서 나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장어'가 먹고 싶었고,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졌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둘도 없는, 바로 그것들에 대한 갈증이므로.